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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매경춘추] 저, 교수님 발자국 소리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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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3

박종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
벌써 한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나에게 어깨에 생긴 암 수술을 받고 추가 항암 치료는 지역의 대학 병원에서 받던 40대 여성 환자가 있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항암 치료를 해주던 주치의가 말하기를 이제 더 치료할 것이 없고, 남은 삶의 기간이 1개월 정도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년만 더 살게 해 달란다. 내가 무슨 수로 1년을 더 살릴 수 있겠나 싶으면서도 일단은 와 보시라 했다. 환자의 폐엔 암세포가 전이돼 있었고, 수술했던 부위도 재발해서 종양이 불쑥 솟아나 있었다. 당시 "글쎄요, 별 의미가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종양내과 교수와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를 설득해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다시 시작했고, 환자는 결론적으로 6개월 정도는 더 살다 가셨다.
암이란 것이 참 희한해서 막상 치료를 시작하면 마치 치료가 될 것처럼 잠시 소강상태를 보일 때가 있는데 이 환자에게서 이런 현상이 있었다. 어깨의 혹이 방사선 치료 덕분에 크기가 줄어드니 환자는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참 교활한 암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회진을 도는데, 다인실의 문가에 있던 환자가 누워 있다가 내가 병실에 들어서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분명 보지 못했을 텐데, 내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해서 "제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물으니 "저 교수님 발걸음 소리를 알아요"라고 답했다.
아, 이런. 내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다니. 그렇다면 이 환자는 온종일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데, 나는 어떤 날은 바빠서 못 가고, 또 어떤 날은 전날 술 한잔했다고 회진을 늦게 하고 그랬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미안하고 부끄럽던지 가슴이 먹먹했다.
환자는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내게는 어제 일처럼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정작 어떤 의사가 될지는 생각해보지 않고 젊은 시절을 보냈다. 중년의 나이가 돼서야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환자를 통해 알게 된다. 아마 의사 대부분이 나와 같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고, 역시 지금의 젊은 의사도 같은 길을 걸을 텐데, 어떤 인생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시대정신은 변하는 것, 어쩌다 보니 젊은 의사들이 어렵고 중요한 분야에 대해 전공하기를 거부하는 시대다. 앞서 산 선배 의사인 우리의 잘못인 것인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참 난감하다. 무엇을 해도 과거보다는 여유롭게 사는 세상에서 오히려 존재의 의미는 퇴색하니 말이다.
"의사는 말이지, 나를 필요로 하는 환자 곁을 지킬 때 보람 있는 거야." 이런 소리를 하면 아마도, "아, 네~" 그러지 않을까. '언젠가는 또 돌고 돌아서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가 다시 소중한 가치로 떠오르고, 올바른 시대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겠지'라는 기대를 해본다.
이제 나도 정년이 한 4년 남았다. 교수 생활 수십 년 동안 정형외과 영역에서 종양학을 전공하겠다는 제자를 단 한 명도 못 길러 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어느덧 교수로서 의사 생활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는 환자가 아닐까 싶다.
본문 [매경춘추] 저, 교수님 발자국 소리 알아요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