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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매경춘추] 죽음 앞에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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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31


박종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

아주 오래전에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에 관한 기사를 월간지에서 본 적이 있다. 교도관의 시각으로 본 것과 사형 선고를 받고 마지막 순간에 감형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 가운데 사형에서 무기 징역으로 감형된 당사자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이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이 되는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사형 집행을 오전에 했고, 그날은 늘 있는 재소자들의 오전 운동이 불허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느 날 오전 운동이 불허되면 누군가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인 것이다.

민주화 투사답게 그는 마지막 순간을 상상할 때마다 늠름해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소자들의 운동이 불허되더니, 교도관들이 방으로 데리러 왔단다. 나오라고 하더란다. 하늘이 노래지고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꼈지만, 늘 하던 다짐을 생각하며 당당하게 나가자는 생각을 되뇌며 방안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교도관이 "사형 집행하는 것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더란다.

순간 정말일까? 그냥 끌고 나가려고 달래기 위한 말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란다. 그런데 정말, 교도소장의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무기 징역으로 감형됐음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방에서 이틀인가 사흘을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한다. 살았다는 생각에 배고픔도 잊고 그저 마냥 행복하더란다.

한 20년쯤 전인가? 빗장뼈에 다발성 골수종이 생겨서 진료를 받은 65세 남자 환자가 있었다. 이분은 특이하게도 수술 후 외래 진료 때마다 내게 양주를 가져다줬다. 당신은 술을 좋아해서 집에 사다 놓은 양주가 많은데, 잘해야 5년, 짧으면 2년 정도 여명이 남았다는 사실에 이제 더는 마실 일이 없으니 내게 주는 거란다. 힘을 내시라는 나의 말에, 살 만큼 살았고 사업도 잘돼서 누릴 만큼 누렸으니 아쉽기는 해도 괜찮단다. 늘 당당했고, 대화는 쾌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검사를 하러 환자분이 자리를 비웠을 때 늘 함께 오는 환자의 아내께 "사장님, 잘 계시죠?"라고 물으니 "잘 있기는요, 매일 술 마시고 울어요" 그런다. 이런, 그렇지. 왜 안 그렇겠는가?

아주 유명한 사찰의 주지 스님이 간암 판정을 받고 간 이식술을 받아서 건강을 찾으셨을 때 내게 한 말이 있다. 막상 간암 판정을 받고 보니, 다시 건강해지면 잘 살아 보고 싶다고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했단다. 웃자고 한 소리겠지만 죽음 앞에서 당당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당당하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혹시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됐을까 봐 초조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을 대한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건강하게 살고 있음에 매일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고. 남 이야기 같고,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예외는 없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내게 온 환자 모두 단 한 번도 암에 걸릴 것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원문 [매경춘추] 죽음 앞에 서면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