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식
언론보도
고려대 허준 교수가 말하는 양자 기술의 `도전의 가치`..."앞으로 10년, 디지털과 양자가 함께 움직이는 하이브리드 AI가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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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1

디지털 오류 정정에서 양자 인터넷까지, 한국 양자 기술의 길을 개척해 온 연구자의 기록
양자 기술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상상 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통신, 보안, 컴퓨팅, 센싱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현실적인 연구와 산업적 시도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양자’라는 단어를 연구와 산업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바로 그 시기에 과감하게 양자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연구자가 있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허준 교수다. 디지털 통신 오류 정정을 전공으로 출발했지만, 그는 양자 통신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한국 연구자들이 설 수 있는 토대를 닦아 왔다.
박사 학위 시절 그의 주 전공은 디지털 통신 오류 정정이었다. 2002년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삼성전자와 함께 표준화 작업에도 참여했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 통신은 이미 완숙한 단계였고, 산업적으로도 활발한 시기였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내가 더 새로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시작되던 무렵, 2006년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강연을 접했다. 삼성전자 공준진 박사가 “앞으로는 양자 컴퓨터가 등장하고, 양자 통신이 새로운 분야로 열릴 것이며, 그 핵심은 큐빗이라는 전혀 다른 정보 단위”라는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허 교수는 그 순간을 鮮明히 기억했다. 새로운 개념 앞에서 느낀 낯섦과 동시에 찾아온 강한 자극. 그는 곧장 마음속에 이렇게 다짐했다. “나는 디지털만 알고 살았는데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도전해 봐야겠다.”
그때부터 그의 시선은 기존의 디지털에서 양자라는 미지의 세계로 향했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디지털보다, 경쟁자가 적고 개척할 여지가 큰 영역이 바로 양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양자 오류 정정 부호 연구에 착수했다. 당시만 해도 이 길은 낯설고 불확실했지만, 오히려 그 불확실성이 도전 의식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 그 자체가 나의 기회다”라는 생각이 그의 선택을 이끌었다.
디지털 통신과 양자 연구의 차이는 분명했다. 디지털 기기는 이미 완숙한 단계에 들어섰고, 하드웨어 자체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류는 대개 전송 과정, 곧 환경 변화에서 비롯됐다. 고속 열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터널을 지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이 신호에 간섭을 일으키며 오류를 만들었다. 그러나 양자는 달랐다. 하드웨어 자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 기기 자체에서 잦은 오류가 발생했다. 전송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뿐 아니라 장치 그 자체의 불안정성이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허 교수는 이 차이를 설명하며, 양자에서 오류 정정 기술의 가치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에서 70년간 발전한 오류 정정 노하우가 양자에서도 거의 동일한 발전 궤적을 보인다.” 그는 디지털에서 쌓은 경험이 양자에서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디지털 오류 정정 기술은 1950년대부터 수십 년간 누적된 노하우 위에 발전해 왔고, 지금 양자는 그 흐름을 40~50년 안에 압축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30년 넘게 다져온 디지털 오류 정정 경험은 그대로 양자에 적용될 수 있었고, 이 점이 그를 더욱 확신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양자 연구를 선택한 이후에도 흔들림 없는 동력이 되었다.
그의 연구 철학은 간단하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는 낯선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을 기회로 여겼다. 미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로부터 “살면서 또 한 번 박사 논문을 쓰는 것과 같은 새로운 주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막연한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말은 실제로 현실이 되었다.
양자라는 낯선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새로워 보여도 과거 경험이 녹아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슴에 새기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태도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ICT 기술이 급격히 변하는 시대에 기존의 지식에만 안주한다면 순식간에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늘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결국 자신이 걸어온 길 위에서 양자라는 새로운 영역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또 다른 긴 여정의 시작으로 삼았다. 과거의 공부와 경험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여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그를 끝까지 움직였다.
세계적으로 양자 기술은 국가 전략 기술로 묶여 쉽게 유출되지 않는다. 허 교수는 이 상황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짚었다. 기술 선진국들은 핵심 기술을 철저히 보호하며, 단순히 특허권이나 로열티를 지불한다고 해서 손쉽게 들여올 수 있는 성격의 기술이 아니다. 그는 이러한 국제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과 선택적 집중이라고 강조했다.
양자 통신은 이미 선두권에 올랐다. SKT와 KT가 7~8년 전부터 시범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상용화의 첫 단계를 열었다. 다만 보안성의 특성상 시장은 자연스럽게 열리지 않는다. "정부가 나서 군, 의료 기관, 개인 정보 보호 기관 등이 먼저 채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이 기술을 키우고 선순환이 가능해져요." 그는 양자 통신이 기술적으로는 준비가 끝났지만, 정책적·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산업화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양자 컴퓨터는 정반대다. 그는 "NVIDIA를 쫓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하드웨어는 주권 차원에서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산업적 경쟁력은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에서 찾아야 해요." 즉, 기초적인 하드웨어 기술은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확보하되, 실질적 산업화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달성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양자 센싱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자율 주행, 로봇, 국방과 같은 산업과 연결될 때 의미가 커진다. 그는 "지금 로봇을 연구하는 분들이 양자 센서를 잘 모릅니다. 서로 만날 접점을 국가나 학회가 마련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단독 기술로는 한계가 분명하며, 다른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서만 성장 동력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원문 고려대 허준 교수가 말하는 양자기술의 '도전의 가치'..."앞으로 10년, 디지털과 양자가 함께 움직이는 하이브리드 AI가 대세" < 기획 < FOCUS < 기사본문 - 인공지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