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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스승’의 100년을 따라 걷다 (2023.9.11. 고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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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30

  • SDGs

    16.정의,평화,효과적인제도(G)

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김준엽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스케치년 기념 특별전 스케치

식민지 청년에서 고려대 총장까지

길이 남을 총장 퇴진 반대 시위

“오늘을 보지 말고 역사를 보라”

 


김준엽 전 총장이 생전 사용하던 유품들. ‘생각’ 노트와 만년필, 시계 등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특별전 ‘長征(장정)-시대의 스승’이 故 김준엽 전 총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고려대 박물관(관장=송완범 교수)에서 열렸다. 김 전 총장의 아들 김홍규(불어불문학과 66학번) 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원장=이진한 교수)을 비롯해 교우들이 모은 김준엽 총장의 유품과 기록은 10월 28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어린 광복군을 기억하며

  ‘長征(장정)-시대의 스승’이 크게 적혀있는 벽을 지나면 전시가 시작된다. 전시는 그의 발자취를 시간순으로 따라간다. ‘1944, 총을 든 식민지 청년’에선 학병으로 징집된 대학생 김준엽을 보여준다. 일본군으로 끌려간 식민지 청년은 한 달 만에 탈출해 중국군 유격군에 합류했다. 벽에 걸린 김준엽 전 총장의 장정 경로가 그려진 지도에는 한국광복군 훈련반에 입교하고, 6000리 대륙 횡단 끝에 충칭 임시정부에 합류한 여정이 나타나 있다.

  한국에서 일본, 중국에서 다시 고국에 돌아오는 그의 민족운동 과정이 그려진 지도는 장정을 실감 나게 한다. 발걸음을 이어가면 ‘작전명: 독수리’ 벽면이 보인다. ‘독수리작전’은 1945년 임시정부와 미국 전략첩보국 OSS가 광복군을 한반도에 투입하기 위해 세운 작전이다. 광복군 김준엽도 작전에 투입됐다. 일본의 항복으로 작전은 무산됐지만 한미동맹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

 

  역사 연구로 세상을 밝히다

  해방을 맞은 김준엽은 중국에 남아 1946년 국립동방어문전과학교(동방어전) 한국어과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재직 시절 집필한 <한일대조문법>과 <동방어전 한어과 1회 졸업생 명부>에서 그가 중국 내 한국학 교육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1948년 귀국한 그는 다음해 9월 고려대에 부임했다. 정년퇴직까지 35년간 고려대를 지키며 ‘중국최근세사’, ‘동서문화교류사’, ‘동양사개설’ 등을 가르쳤다. 1951년 중국인 시각에서의 중국사 연구를 위해 대만 국립타이완대로 유학했고, 1958년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로 부임하며 세계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타이완 대학 수강신청서와 성적표’, ‘국공투쟁 30년사 연구노트’, ‘하버드 청강 강의계획서 모음’에서 교수 김준엽의 치열한 유학 시절을 느낄 수 있다.

  1957년 설립한 아세아문제연구소(현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연)는 한국 대학 연구에 큰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14년간 아연 소장으로 재직할 때 찍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사진, ‘아주인민반공연맹중화민국총회’에서 찍은 장제스 대만 총통과의 사진, 인도를 방문해 찍은 네루 총리와의 사진 등으로 세계로 나간 아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아세아문제연구소 벽면 반대편에선 1982년 제9대 고려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총장 김준엽을 만날 수 있다. 일기에 적힌 ‘내가 고대의 책임자라고 한다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허다하다’는 구절에서 그의 책임감이 엿보인다.

  ‘시대의 스승’ 벽면은 총장 사퇴 반대 학생 시위를 서술한다. 김준엽 총장은 민정당사 점거 농성 사건에 연루된 고대생을 제적시키라는 문교부의 지시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1985년 2월 졸업식장, 그의 연설과 총장 사퇴를 반대하는 학생 시위 현장이 사진에 생생히 담겼다. 김준엽 총장의 사퇴를 소재로 그려진 고대신문 4컷 만화 ‘고타비’ 원고와 ‘김준엽 총장님의 강제 사퇴에 전 고대가족은 분노한다’ 유인물들도 전시됐다. 김 전 총장의 ‘총장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많았어도 사퇴반대 시위는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라는 말과 일기 구절 ‘총장을 그만둔 요새, 나는 이렇게 홀가분하고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일생에 해 본 일이 없다’에선 그가 느낀 고마움과 사퇴 이후의 후련함이 돋보인다.

  전시장 뒤에는 김준엽 총장의 졸업식사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도 역사적 현실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역사의 심판은 모면할 수가 없습니다.” 중후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총장에서 물러난 후 그는 사회과학원 이사장으로서 통일과 외교 같은 국가 현안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1988년 중국 방문을 시작으로 베이징대를 포함한 13개 대학의 한국학연구소 설립에 앞장선 김 전 총장은 중국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중국 정부에 한국인 최초로 ‘중국언어문화우의장’을 받았다.

  에필로그 벽면엔 김준엽 총장의 명언과 함께 그가 생전에 사용한 물품들이 전시됐다. ‘역사의 신은 우리에게 오늘을 보고 살지 말고 역사를 보면서 살라고 말합니다’는 문구 아래 위치한 갈색 지갑과 신분증명서, 독립유공자증, 국가유공자증서, 안경, 시계, ‘생각’ 공책과 만년필, 백세주와 은하수 담배를 보며 그의 생전 모습을 느낄 수 있다.

 


1985년 사학과 2학년 학생들과 2023년 김준엽 특별전의 방문객들이 남긴 편지들.
 

  출구에는 김준엽 전 총장의 퇴임 직후 1985년 사학과 2학년 학생들이 적어준 편지와 방문객의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중문과 83학번부터 모산초 6학년 아이까지 나이대도 다양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역사에 살겠습니다’, ‘요즘 시대, 더욱 그리운 독립군 총장님의 행보입니다’, ‘존경하는 마음 담아 아들 이름을 준엽이라 지었습니다’와 같은 편지를 볼 수 있다. 전시장을 찾은 중국인 유학생 왕로(王璐, 공과대 신소재22)는 “역사를 좋아하진 않지만, 외국에서 중국과 관련된 사람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친근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최소은(문과대 사학23) 씨는 “김준엽 총장의 뜻을 받아 고려대가 특정 종교나 사상에 구애받지 않고 학문을 다양하게 탐구할 수 있는 대학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글 | 하수민 기자 soomin@

사진 | 손제윤 기자 h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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