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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인공지능에는 지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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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7

고려대 미디어대학 마동훈 교수

대학에서 꽤 오랫동안 시험이 아닌 자기 주도형 에세이를 통해 학생들을 평가해 왔다. 강의실에서 토론한 내용 중 자신의 주제를 스스로 정해, 호흡이 긴 자신만의 글을 써 보도록 한다. 우리 학생들은 자신만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시도를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 주어진 문제의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늘 평가받아 와서 그런 것 같다. 대학에서만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찾아 열정적으로 공부해 보자 해도, 새 옷이 몸에 잘 맞지 않는다.

지난 6월 16일 실시된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에서는 '우리의 미래는 과학 기술에 달려 있는가'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자신의 관점과 경험에 따라 매우 다양한 글이 가능한 주제다. 하나의 정답(定答)이 없고, 다양한 정답(正答)들이 있기에 좋은 문제다. 채점에도 당연히 공이 많이 든다. 그러나 바칼로레아가 이런 시험을 고집하는 이유는 곧 사라질 조각 상식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것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단순 지능(intelligence)을 넘어선 지성(intellectuality)의 중요성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과연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압도한다고 얘기하는 시대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성의 요건과 역할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첫째, 인간 지성이란 우리 주위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포착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지적 활동이다. 인공지능은 주어진 문제에 답하지만, 인간은 무엇이 중요한 질문인지 스스로 얘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기계가 갖고 있지 않은 감정이입(empathy) 능력이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치,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업, 다음 세대의 고민을 경청하는 교육은 지능이 아닌 지성에서 나온다.

둘째, 인간 지성은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다원적(divergent) 해결 방식을 찾아가는 경로다. 세상의 모든 난제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다원적 복합성이다. 국가, 경제, 인종, 종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글로벌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인간 지능의 구조적 구획을 넘어서는 복합적 사고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성의 혜안이 필요하다.

셋째, 우리는 인간 지성으로 인해 지능의 영역에서 간과하기 쉬운 공동체 윤리에 근거한 문제 해결에 도전할 수 있다. 인간 공동체에는 당장 외과 수술이 필요한 악성 사회 문제도 있지만, 당장 곪아 터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치되는 양성(benign) 사회 문제들도 만만치 않다. 눈앞의 포퓰리즘 정치와 이해타산을 고려한 상술에 가려진 공동체 윤리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인간 지성의 힘이다.

최근 '에이젠틱 인공지능(agentic AI)'이라는 용어가 산업계를 중심으로 폭넓게 인용되고 있다. 기계가 과거 인간의 전유물이었던 지능의 영역을 주도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징후에 대한 마케팅적 표현이다. 백번 양보해서 기계의 지능적 기능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이 인간 지성의 영역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찾아내고, 다원적 해결 방안을 심층적으로 모색하고, 공동체 윤리에 기반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인간 혹은 기계 지능이 아닌 인간 지성의 대체 불가능한 잠재력으로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에이젠틱' 혹은 '주도적'이라는 용어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 지성의 형용어로만 쓰일 수 있다.

정부의 학교와 대학 교육 정책이 재점화되고 있다. 대학 입시가 모든 논의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양성' 사회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언론도 과잉 공급되는 대학 입시 정보 보도를 자제하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진정 필요한 대학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층 논의에 주력했으면 한다. 미래 지성의 연습장이 되어야 할 대학을 단순 지능의 훈육장으로 방치할 수는 없다.

기사 원문 [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인공지능에는 지성이 없다 - 파이낸셜뉴스